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딤전6:11-16)
오직 디모데에게 준 편지에만 바울이 선한 싸움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싸움에는 악한 싸움과 선한 싸움이 있다. 싸움이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싸우는 척 할 때도 있고, 싸우면서 정이 드는 경우도 있다.
현실적으로 인류는 항상 전쟁을 하였다. 전쟁을 통해서 막대한 인명피해와 재산상의 손실을 입기도 하지만,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신속하게 복구된다. (사람들이 온통 복구에만 매달리고 죄 짓는데 시간을 소모하지 않기 때문도 있다.) 오히려 전쟁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경우도 있다.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주인들과 새로운 생각들로 인해서 세상이 더욱 활기를 띠게 된다.
분명히 대부분의 전쟁에서는 결국 선한 사람들이 승리를 거두었다는 점이 우리를 안심시킨다. 앞으로 어떤 전쟁이 세상에 벌어지더라도 전쟁의 주인은 역시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가장 선한 자에게 승리를 안겨주실 것을 믿는다.
악이 비록 성할지라도 악을 이겨내는 것은 오직 선함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악이 악한 이유는 그가 더 이상 건강하지 않다는 것이며, 선이 선한 이유는 그는 더할 나위 없이 건강하고 강하다는 것이다.
악이 성하면 결국에는 멸망밖에 남는 것이 없다. 악한 것은 생산도 못하고, 건설도 못하고, 생식도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오직 전염될 뿐이며, 선을 악으로 물들게 하고 함께 멸망의 길을 걷게 할 뿐이다. 그러므로 단 한 사람이라도 선한편에 서고, 선을 지키고, 선으로 악에게 대항하고 물들지 아니하면 그는 악을 이기고 승리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악한 싸움이 아닌,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싸움을 두려워하거나 싸움이 없는 세상을 꿈꾸지 말자. 현실적으로 그런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가 완전하게 실현되기 전까지는 불가능하다. 스위스가 선택한 길이 얼마나 현실적인 길인지 생각하자. 장로교가 최초로 꽃을 피운 나라 스위스. 대대로 전쟁 용병국가 스위스. 이제 회개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었던 나라. 그 나라는 전체가 군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완전무장 중립국이다. 그들은 결코 이단들이 부르짖는 무기 없는 평화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직은 무장하지 않으면 열강에 먹힐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들은 평화를 사랑하되, 비현실적인 평화를 꿈꾸지는 말아야 한다. 전쟁의 반대말이 평화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전쟁과 평화라는 소설 때문에...) 평화는 평화를 사랑하는 자들에 의해서 지켜지는게 아니라, 강한 자들에 의해서 지켜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이여, 평화를 사랑하되 강한 자가 되어서 평화를 지켜내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다음으로 선한 것이 가장 강하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마귀가 유언비어를 퍼뜨려서 선한 것은 약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것을 믿지 말자. 어떤 사람들은 연약하기 때문에 평화를 선택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비슷한 논리로 나약한 사람들이 악해지는 것을 통해서 강해지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평화를 지켜내지는 못한다. 평화는 오직 선하면서 강한 자들에 의해서 지켜진다. 그리고 선해야만 강해진다는 것을 잊지 말자. (악하기 때문에 강하다고 착각하거나, 선하면서도 강한 줄 모르는 경우도 있다.)
몸에도 나쁜 것을 투입하면 몸이 약해지고, 선한 것을 투입하면 몸이 건강해진다. 그러므로 선한 것이 더 강하다는 것은 당연한 논리이다. 그러므로 강해지기 위해서 악한 것을 선택하는 자들은 단순히 마귀에게 속았을 뿐이다. 선한 것이 더 강하다고 확신하라!
그러므로 싸움을 싫어하지도 말고, 싸움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도 말자. 그리고 선한 싸움을 위한 전략을 구상하자. 어떻게 악한 것들을 공략할 것인가, 어떻게 거짓과 싸울 것인가? 무슨 자원을 사용할 것인가, 누구와 연합할 것인가를 궁리하자.
하나님은 전략가시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전략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전략가를 존중해야 한다. 악에게 굴복하지 말고, 악을 막아서고, 악을 소탕하고, 악을 두려워하지 말자. 악을 무시하지도 말고, 방치하지도 말고, 비판하지도 말자. 대신 선으로 악을 이겨낼 것을 궁리하자.
세상에 죄가 만연할 때 하나님은 세상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왜냐면 하나님은 선이 악을 이겨낼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용사로 부르셨고 승리를 예비해 두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귀를 물리칠 것을 기대하고 계신다.
마귀는 자기가 질 것을 뻔히 알기 때문에 비열하고 악랄하게 거짓말과 더러움과 치사함을 이용한다. 정정 당당하께 싸우기를 좋아하는 선한 사람들은 거짓말과 더러움과 치사함에는 치를 떨고 도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기에 속지 말고 지속적으로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그 길이 내가 가야할 길이다.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 두 번이나 나온 말(전체 성경에 오직 이곳에만 이런 표현이 있다.)은 ‘선한 증언’이라는 말이다.
선한싸움이란 ‘선한 증언’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눈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그것을 용기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말할 때 악한 말이나 비판이나 비아냥이나 조소나 무시함 등을 이용하지 않는 것이 지혜가 되겠지만, 그렇게는 못하더라도 ‘선한 증언’만큼은 양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악한 말이 난무할 때는 더욱 그렇다. 선한 사람들이 잠잠하면 않된다. 선한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선한 증언을 해야한다.
흔히는 선한 증언을 악한 태도나 비판하는 투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선한 증언이 공격을 당하기도 하겠지만, 그렇다고 선한 증언을 포기하지는 말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도우신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불어 오신다. 세상을 바라보는 선한 눈. 하나님의 눈이 필요하다.
18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딤전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