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고전1:22-31)
하나님의 지혜는 가장 탁월한 지혜다. 온 우주는 하나님의 지혜와 그 무한하신 능력으로 잘 운행되고 있다.
사람들 중에는 세상이 잘못되면 어쩌나 하고 염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에 불과하다.
다만 사람들의 죄악이 만물들을 탄식하게 한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롬8:19,22)
인류는 그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다.
세상이 많이 발달하여서 이제는 지구촌의 모든 소식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난리와 전쟁의 소문이며, 천재지변에 관한 소식들도 순식간에 접하게 된다.(그래서 상대적으로 과거보다 더 많은 난리 소문을 접하게 된다.)
천재지변에 관한 소문을 접하면서 우리가 좀 더 지혜로울 필요가 있다. 그것은 천재지변을 대비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 그것은 우리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어려움에 처한 자들을 동정 해야 한다는 것(그들의 구원과 소망을 위해서),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는 겸손하게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주를 받았다는 둥, 말세라는 둥, 우리도 안전하지 않다는 둥 이런 말들은 지혜롭지 못한 말들이다.(근거 없는 말은 아닐지라도 지혜로운 말이 아니다.)
그리고 아직은 때가 아니다.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 되어야 하고, 결국에는 해와 달과 별들에게 눈에 보이는 변화가 있을 것이니, 그때까지는 깨어 있는 것으로 지혜를 삼아야 한다.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마24:6-8)
인류는 초연해야 한다. 세상은 재앙을 경험해도 하나님의 통치는 여전하다.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도 여전하다.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우리는 잘 이겨나갈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시다.
문제는 두려움에 떠는 자, 거짓에 속는 자, 자포자기하거나 교만한 자들에게 있다. 사람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런 현상들이 바로 마귀적인 것이다. 또 실제로 마귀의 유혹이 이런 것들이다.
특히 오늘 본문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자들에게 주시는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하나님은 지혜로운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하시지만, 그 지혜 때문에 교만해져 있다면 그는 참으로 더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고 봐야 한다. 왜냐면 그는 마귀의 유혹과 거짓에 그대로 노출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지혜롭지 않아도 교만할 수 있다. 요즘은 특히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도 교만할 수 있고, 권세가 없어도 교만할 수 있다. 왜냐면 과거보다 월등히 표현의 자유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면서 교만한 자가 가장 위기에 직면했다고 볼 수 있다.
왜냐면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의 음성이나,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이 파송한 하나님의 사람들, 심지어 가까운 식구들이나 친구들의 조언도 무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운행되면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 모든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신다. 어떤 피조물들은 세력을 잃게 하시고, 어떤 피조물들은 땅을 차지하게 하신다. 때에 따라 장소에 따라 하나님의 주권과 지혜로 결정하시고 일하신다.
즉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교만할 수 없다. 심지어 하나님은 악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지혜로 사용하신다. 자신이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다면 그는 가장 불행한 사람에 불과하다.
또 연약한 사람이나, 지혜가 없는 사람이나, 권세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은 사용하신다. 심지어 그들을 들어서 사용하실 경우도 있다.(물론 연약한 사람 모두를, 지혜가 없는 사람 모두를 사용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그렇더라도 겸손한 자들에게 지혜와 권세를 주신다는 뜻이다.)
왜냐면 그들이 겸손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수행하도록 준비 되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겨 교만한 자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지 않으며, 그 뜻에 순복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그들은 오히려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모르고, 그가 인류에게 기적을 가져오신 것을 모른다면 아무리 예수님의 교훈을 좋게 여긴들 그것이 나에게 무슨 유익이 있을까? 예수님의 모든 교훈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할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예수님의 성품을 모르고, 예수님의 신성과 그 전능하심과 그 지혜를 모른다면 아직도 소꿉장난 하듯이 세상을 사는 것과 같다. 왜냐면 예수님이 진정한 주권자요, 세상의 주인이시오, 만왕의 왕이시오, 모든 지혜의 수여자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통치와 그 지혜와 그 품을 떠난 모든 인류는 방황하게 된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모든 사람은 마귀의 유혹과 그 거짓에 속아 넘어가게 된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지라도 여전히 마귀의 유혹과 그 거짓 앞에서 굴복하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라는 선언을 깊이 새겨야 한다. 설령 하나님이 아무리 미련하더라도 사람들의 지혜보다야 낫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라고 인정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첫째, 예수님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이다. 오직 그에게만 하나님의 신성이 깃들어 있고, 그래서 전능하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유일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와 온 우주의 모든 문제의 해답을 발견할 수 있다.
둘째, 우리는 이것을 믿음으로 예수님의 보혈로 죄와 저주를 씻김 받고, 예수님의 신성에 참여하게 되어 우리 본래의 신분을 회복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이제 예수님의 신성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은 곧 성령의 나타남으로 증거될 것이다.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지혜를 주시며,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내어 쫓으시며 지혜와 능력과 영광을 회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