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믿음
   
이리를 이기는 양들

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17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18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마10:16-마10:20)


*세상은 이리이며 성도는 양이다.(16a)

성경에는 역설적인 면이 많다.  역설이라도 괴설은 아니다.  오히려 진실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성경은 바른 말씀이 있지만, 그 말씀을 그대로 세상에 적용하기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성경은 오래전에 기록된 책이고 세상은 급변하고 있으며 현대적인 많은 지식이 거기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부분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나에게 별로 유익하지 않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면 가장 중요한 원리가, 다른 어떤 책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절대적 지혜가 성경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보면 이 세상은 이리이며 성도는 양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리와 양이라는 점에서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  이리와 사자라고 했으면 어떨까?  그정도는 아니더라도 이리와 진도개정도라도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리와 양이다.  이리는 악랄하게 양을 잡아먹는다.  심지어는 양의 탈을 쓰고 양에게 접근해서 안심하게 해 놓은 다음에 순식간에 돌변해서 잡아 먹는다.  그러니 더욱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는 이리보다는 양이 더 많다.  이리보다는 양이 더 행복하다.  태양이 사라지지 않는한 양들은 굶어죽을 걱정은 없다.  그러나 이리는 양 한 마리를 얻기 위해서 엄청난 수고를 해야 한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잡혀먹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양이 불쌍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양을 잡아먹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 밖에 없는 이리의 입장은 더욱 처절하다.  물론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양이 불쌍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이리는 그보다 곱절의 고생을 하면서 양을 잡아 먹는 것이다.  양들은 풀을 서로 먹겠다고 아웅다툼을 하지는 않는다.  왜냐면 지천에 깔려 있는게 풀이니까.  그러나 이리들은 양을 한 마리 잡으면 일단 무조건 덤벼들어서 한조각의 고기라도 더 먹기 위해서 아수라장이 된다.  위 아래도 없고 예의 범절은 단어조차 모른다.  양들도 서로 질투하기도 하지만, 이리처럼 항상 경계하며 싸울 준비를 하면서 살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서 쫒겨다니는 생활이긴 하지만, 이리보다는 양이 더 낫다는 말이다.

요즘도 멸종위기에 처해있는 동물은 이리이지 양이 아니다.  양은 사람들이 보호하지만, 이리는 보호받지 못한다.  요즘들어서 야생동물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왜냐면 멸종의 위기에 처해있어서 먹이사슬이 무너지고, 결국에는 전체 지구가 병들어가기 때문이다.  모든 동물들은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의 보호아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창조원리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보호아래 있는 동물들은 멸종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자, 그런데 사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에 등장하는 이리와 양은 실제 동물을 말하는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을 이리에, 성도를 양에 비유한 것이다.  다 같은 사람인데 어떤 사람은 이리로, 어떤 사람은 양으로 표현하셨다.  이 말은 세상 교회에 다니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다 나쁜 사람이라는 표현이 결코 아니다.  다만 세상에서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실은 자기도 약육강식의 논리대로 살기는 하지만, 결코 그런 논리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불안하고 두려워서 약육강식이지, 잡아먹기 좋아하고 남 괴롭히는 것 좋아서 사나운 사람은 거의 없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기독교인들이 문제이다.  왜냐면 기독교인은 스스로가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도 기독교인들은 선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앞에서 긴장을 늦추고 한숨을 돌리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이고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을 만날 때 영혼이 쉼을 얻고 편안히 앉아서 긴장을 늦추고, 때로는 자기보다 힘쎄고 강한 사람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고 괜히 강한척 폼잡기도 하고 심지어는 분풀이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이때 문제는 기독교인들이다.  세상 사람이야 봉이라도 잡은양, 실컷 제 성질 부리다 가지만, 남겨지고 찢겨진 기독교인들은 과연 어떻게 치유받을 것이며, 어떻게 위로받을 것인가?  죽었으면 죽었지 이리 흉내를 내지 못하고 약하디 약한 양처럼 살아가는 상처 투성이의 성도들.  그들에겐 오직 하나님밖에 없다.  이리는 잡아 먹으면서도 미안한 구석이 없다.  안됐지만, 내 밥이 되어 달라고 격식을 차릴줄도 모른다.  이빨이 들어갈 구멍만 보이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물어 버린다.  그리고 자기 이익을 챙겨서 달아나 버린다.

그런데 마치 이리 가운데 양을 보내는 것과 같은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이셨다.  주님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아마도 당장에 천국으로 데려 가고 싶은 마음이셨을 것이다. 

성도들에게 이리의 탈이라도 씌워서 세상에 내 보내셔야 하시지 않을까?  이리들에게 잡아 먹히지 않으려면 이리를 속이는 위장술이라도 가르쳐 주셔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주님은 그러지 않으셨다.  왼편 뺨을 때리면 오른편 뺨까지 돌려 대라고 하셨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다.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를 빌거든 용서해 주라고 하셨다.  심지어는 절대 용서를 빌지 않을 자들에게 미리 용서를 선포하시기도 하셨다.  칼을 사용하는 제자들을 말리시며 칼로 일어선자는 칼로 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그리고는 서슴없이 적들의 계략에 말려 들어가셨으며, 자신을 위한 변명도 하지 않으시고 욕을 당하셨으나 맞대항해 욕하지 않으시고 채찍을 맞으셨으나 그것은 우리의 평화를 위함이셨고, 피를 흘리셨으나 그것은 우리의 죄악을 위함이셨다.

본인 스스로가 철저히 이리와 같은 마귀들에게 유린을 당하셨고 죽으셨지만, 결코 죽음이라도 그를 가두어두지 못하였으며 그는 부활하심으로서 그 모든 고난과 수치와 형벌을 이겨내셨다.

그리고 주님은 ‘두려워 말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대장 예수께서 이 세상을 이기셨다.  그러니 그의 기르시는 양인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이리는 결코 목자를 이기지 못한다.  목자의 명을 따라 움직이는 목사도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들판을 헤매고 다니며 같은 동료와도 아귀다툼을 벌이는 이리떼들을 동경하지 말고 평안의 집에 거하는 양떼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리떼가 아니라 양떼임을 명심하고 감사하고 행복하자.  왜 날카로운 이빨을 주거나 날쎈 몸매를 주지 않았을까하고 원망하지 말자.  이리로 사는 것보다 양으로 사는 것이 엄청나게 큰 행복임을 깨닫자.


*성도의 무기는 지혜와 순결이다.(16b)

성도에게는 아무런 무기도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성도에겐 지혜와 순결을 주셨다.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담대하며 순결하자.

주님께서는 우리가 뱀처럼 지혜로워야 한다고 하셨다.  또 비둘기처럼 순결해야 한다고 하셨다.  뱀은 간교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뱀은 항상 주위의 형편을 살피기 위해서 혀를 낼름거린다.  양들은 주위 환경에 어둡다는 약점이 있다.  그래서 항상 목자의 도움을 받아서 이동한다.  그러나 스스로 방심하다 목자의 눈길을 벗어나기도 한다.  그러면 더욱 위험에 빠지고 만다.  위험에 빠져서도 주위 환경에 재빠르지 못한다는 약점이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자신이 목자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나 않은지, 자신이 위기에 처해있지나 않는지, 위기에 처해있으면 지금 마귀가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를 철저히 파악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성도에게는 뱀처럼 지혜로운 면이 필수적이다.  방심한 성도는 여지없이 마귀의 타겟이 되고 넘어지고 무너지고 상처를 입게 된다.  무리 중에 있는 양들이 위험에 빠지는 예는 거의 없다.  항상 무리에게서 멀리 떨어지는 양들이 위험하다.  그러므로 항상 교회생활에 충실하며 목자의 음성을 잘 들어야 한다.

뱀같은 성도만 되어서는 않된다.  성도 중에는 뱀같은 성도들이 많다.  심지어는 세상에 살면서 거의 양의 모습은 없고 뱀같은 모습만 보이는 성도들도 있다.  주님 말씀에 충실하여서 좋기는 하지만, 두 번째 말씀에도 순종해야 한다.  그것은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뱀처럼 지혜롭더라도 교묘히 죄를 짓지는 말라는 뜻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죄를 지으면서 이런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신다.  주님은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말씀하셨다.  즉 아무런 죄도 짓지 말라 하셨다.  그렇다고 비둘기같이만 되어서도 않된다.  뱀같고 비둘기같아야 한다.


*위기앞에 삼가는 성도가 되어라.(17)

왜 우리는 지혜롭고 순결해야만 할까?  그것은 대적 마귀가 항상 성도를 지켜 보면서 틈을 노리기 때문이다.  매번 긴장하고 사는 것이 지겹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실제로는 긴장하지 않고 사는 것이 더 지겹고 더 불행하다.  성도로 살지 않더라도 세상은 긴장의 연속이다.  이리는 양보다 몇갑절 긴장하고 살아야 한다.  성도는 오히려 목자의 보호를 너무 의지하기 때문에 너무 안일한 생활을 하기 쉽다.  그러므로 성도는 위기 앞에서 긴장하고 지혜와 순결을 잘 발휘해야 한다.  양처럼 나약한 성도에게 지혜와 순결 마저도 없다면 그는 항상 얻어맏고 사는 불쌍한 존재밖에 되지 못한다.  하나님은 그것을 싫어하신다.  성도는 오직 폭력과 위협과 욕심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세상 사람들에 비해 나약하게 보일 뿐이다.  사실은 진실이 무기이고 성실이 무기이고 지혜가 무기이고 순결이 무기이다.  폭력은 한번은 통해서 계속적으로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실은 언제나 통한다.  위협은 한번밖에 효과가 없다.  그러나 성실은 언제 어디서나 통한다.  그러므로 위기앞에 강인한 성도가 되어야 한다.


*고난에 직면해서 복음을 전하라.(18)

예수를 믿는다는 믿음 때문에 도전을 받고 위협을 받고 있는가?  그렇다면 더욱 복음을 전하는 것밖에 없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전도를 당할까봐 두려워한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를 믿으면 시간과 재물을 손해보며 여러 가지 간섭을 받는다고 싫어한다.  사실은 마귀에게 빼앗기는 시간과 재물이 더 많다는 것을 모른다.  마귀의 간섭이 더 집요하다는 것을 모른다.  마귀가 자유를 주는 것 같지만 방종일 뿐이고, 번민과 한숨과 두려움과 죄책감과 좌절과 우울함과 수치감과 굴욕감을 줄 뿐이다.  그러므로 성도에겐 복음이 가장 강력하다.  복음을 전할 때 성도는 몇갑절 강해진다.  가장 강한 무기가 복음이기 때문이다.  순결하면서 지혜를 구하라.  어떤 이리도 감히 달려들지 못할 강력이 그 속에 있다.  성도는 나약하지 않다.  이리를 이기는 양의 모습이 성도의 진짜 모습이다.


*두려워 말라 성령께서 너를 도우신다.(20)

마땅히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신다는 말은 성령께서 수시로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를 공급해 주신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진짜 잡아 먹히는 양들은 그리 많지 않다.  피흘리며 순교하는 예가 비일비재하지는 않는다. 

혹 상처를 입었는가?  걱정하지 말라.  성령의 치유력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시다.  성령께서 고치지 못할 마음의 병은 없다.  예수님은 의사시다.  여러분의 병을 직접 고치신다. 

그러므로 담대하자.  지혜롭고 순결하게 세상을 이겨살자.  이것이 이리 가운데 우리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다.





<참고>

-다음은 오늘 본문 말씀에 적합한 내용으로서 훌륭한 설교이기에 함께 게제합니다.


    * 설교자 : 김동호 목사(숭의교회)  출처:c3tv.co.kr

세상에 겁먹지 말라

마태복음10:16-33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면서 마치 양을 이리에게로 보내는 것과 같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곰곰이 곱씹어 보면 예수님은 양과 같은 사랑하는 제자들을 이리와 같은 세상 속으로 보내셨다는 말이 됩니다. 쉽게 생각하면 어떻게 예수님이 그러실 수 있을까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지만 그러나 사실 성경을 잘 읽어보면 이와 같은 정신은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정신과 사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볼 때 하나님은 참 도전적이시고 호전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에게 넓은 길을 걷게 하지 않으시고 좁은 길을 걷게 하시는 분이시며, 편하고 가벼운 삶을 살게 하시는 분이 아니시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좇게 하시는 그런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일수록 환난을 격게 하시며 그 환난을 통하여 연단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와 같은 연단을 통하여 어떠한 환경과 처지에서도 능히 만족하며 자신의 꿈과 소망을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게 하시는 분이 바로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진정한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식이 판을 치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식을 고집하며 사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양이 이리떼 속에서 사는 것만큼이나 힘들고 어려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뻔히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그와 같이 살벌한 세상으로 내 모시고 계십니다. 그것도 세상과 타협하여 세상과 동화하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고치고 치유하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양은 이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양을 이리떼 속으로 몰아 넣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양을 이리 밥이 되게 하려고 그러시는 것일까요? 아니요 반대로 이리를 양의 밥이 되게 하려고 그러시는 것입니다. 양은 이리를 이길 수 없는데 어떻게 이리가 양의 밥이 된다는 말입니까? 거기에는 숨어있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내가 함께 갈 터이니 걱정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고 , 두려워하지 말고 세상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당신을 믿고 이리떼가 우글거리는 세상으로 들어가라는 것이고 들어갈 뿐 아니라 들어가서 세상과 싸워 세상을 바꾸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잘 보면 이리 떼와 같은 세상 속에 들어갈 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라는 의미와 내용의 말씀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9절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라는 말씀과 20절"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 곁에 서서 그때 그때마다 피할 길을 열어 주시고 저들을 대적하고 싸울 수 있는 능력을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정작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28절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29절 "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하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절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세상을 두려워하면 비겁한 자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지혜로운 자가 됩니다. 그리고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있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모르면 어리석은 자가 됩니다. 어리석은 자가 되면 세상을 두려워하는 비겁한 자가 되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며 18절에서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 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왜 예수님이 지혜를 말씀하실 때 뱀을 이야기했는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혜를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잠언에도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경외한다는 말의 뜻이 공경하고 두려워한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모르는 것이 어리석음의 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이리 같은 세상 무서운 줄은 알지만 이리와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은 무서운 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고 함부로 사는 것은 참으로 이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무서운 줄 아는 지혜가 있을 때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용기가 생겨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악하고 더러운 세상 속에서도 담대하게 비둘기처럼 순결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무서운 줄 잘 모르지만 세상과 마귀는 하나님 무서운 줄을 압니다. 때문에 양과 같은 우리들일지라도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대히 세상을 대적하면 세상은 우리를 이기지 못하고 우리 앞에 굴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믿음입니다. 우리에게 그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사울과 같이 평상시에는 하나님을 믿는 것 같으나 막상 골리앗이 쳐들어오면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은 싹없어지고 눈앞에 골리앗만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골리앗만 보이게 되면 하나님은 하나도 무섭지 않고 골리앗만 무섭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처럼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계신다는 믿음이 있으면 아무리 골리앗이 크고 강하다고 하여도 골리앗이 하나도 무섭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골리앗을 대적하여 싸울 수 있는 용기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할 때 10 정탐꾼은 가나안 사람들에 비하면 우리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 보기에 메뚜기 같아 보일 정도라며 가나안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똑 같은 상황을 보고도 저들은 우리의 밥이라며 가나안으로 들어가자고 주장을 하였습니다. 상황을 보는 눈은 똑 같았으나 10 정탐꾼에게 부족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저들과 함께 하시는 전능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었습니다.


믿음의 눈이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저들을 광야에서 40 년 간 방황하게 하셨습니다. 방황한 후에도 가나안 땅을 정복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저들은 결국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광야에서 새로 태어난 자손들과 믿음의 눈을 가지고 가나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였던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똑같은 상황이 우리들에게도 주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조건을 배제한다면 우리는 양과 같고 세상은 이리와 같아서 도저히 세상을 이길 수 없고 고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밤낮 전능하사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세상은 골리앗만 하고 우리는 어린 다윗 같아도 세상을 두려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양과 같고 아무리 세상은 이리 같다고 하여도 그 세상을 두려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세상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결국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혜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도 모르고 그 하나님이 정말 무서워해야 할 전지전능한 분이시라는 것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설교는 이렇게 하여도 저도 믿음이 부족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저도 세상이 무섭습니다. 두렵습니다. 부담스럽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도망가고 싶고, 모른 척 외면하고 싶고, 적당히 타협하며 편히 살고 싶습니다.


저 자신도 문제이지만 제 아이들을 생각할 때 염려가 더 많습니다. 정직하고 투명하며 성실하게 살며 세상을 거슬려 살라하면 저들이 얼마나 험한 인생을 살아야 할까를 불 보듯 빤히 알 수 있는데 저는 그것이 솔직히 두렵습니다. 그것이 제 솔직한 심정이며 마음입니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정말 예수님의 마음이 이해가 갑니다. 제자들을 세상으로 내 보내시며 너희를 세상으로 보내는 것이 마치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 같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일이 부담스럽다고 아이들에게 세상 타협하며 적당히 살라고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위험과 어려움을 회피하며 살라고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세상과 직면하라고 가르칠 수밖에 없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정면으로 돌파하라고 가르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제가 살면서 성경을 통하여 배웠던 삶의 철학인 '싸우면 7일 도망가면 40년'을 가르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세상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시인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세상에서 자신을 너무 많이 부인하며 비겁하게 살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것에 대하여 엄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들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시인하지 아니하고 부인하면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도 우리를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교회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은 큰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큰 믿음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세상에서 하나님을 시인하는 것, 범사에 그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세상 식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식을 고집하며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식을 이야기하면서도 막상 세상에서는 세상 식대로 사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와 같은 일은 불가능합니다. 믿음을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약한 것이 아닙니다. 어린 다윗을 골리앗과 직면하게 하며 실제로 싸워서 이기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골리앗과 같은 세상을 보고 두려워 떨며 그와 타협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교회에서 믿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믿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누구도 다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믿어야 합니다. 믿음은 교회에서도 필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믿음입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시라고 믿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우리에게 정말 우리가 무서워해야 할 것을 무서워하는 지혜와 무서워하지 말아야 할 것을 무서워하지 않는 용기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 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지혜와 순결치 못한 세상에서 순결할 수 있는 용기가 바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온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본문 말씀 전반에 걸쳐서 이리떼와 같은 세상에서 박해를 받고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이 옆에 계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고 지켜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히 세상을 직면하라고 말씀해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다가 그랬는지는 잘 모르나 어렸을 때 저희 아버지로부터 자주 들었던 말 중에 하나는 '다리 부러진 장수 성안에서 곤다'라는 말이었습니다. '곤다'라는 말은 이북 사투리로 '큰 소리를 친다'라는 뜻입니다.


다리 부러진 장수가 성안에서 큰 소리를 치는 것은 비겁한 것입니다. 부끄러운 것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어린 저에게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뜻에서 자주 그런 말씀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날 많은 크리스천들은 다리 부러진 장수와 같습니다. 성안인 교회에서만 큰 소리를 칩니다. 세상에 나가서는 꼼짝도 못합니다.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시지는 않아도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하늘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라 이 땅에도 계시는 분입니다. 이 땅에서 이 땅이 돌아가는 것을 무력하게 구경하시는 분이 아니시라 이 땅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사탄이 우리를 속여서 세상이 마치 세상 식대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도 하나님의 식대로 움직이고 돌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식대로 살아야 땅에서도 승리하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방향 감각이 잘못되어 그것이 잘 믿어지지 않지만 그러나 그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식대로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우리를 승리와 성공과 구원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믿으면 그대로 가야하고 믿으면 그 식대로 살아야만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누가 세상의 주인인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탄이 세상의 주인 인 것처럼 우리에게 사기를 치지만 아닙니다. 그것은 거짓입니다. 사기입니다. 속으면 안됩니다.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사탄이 무어라 하든 세상은 창조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법과 식을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세상 식대로 산 사람은 실패하였고 하나님의 식대로 산 사람은 성공하였습니다. 세상 식대로 사는 사람들이 풀이 순간적으로 왕성하게 자라듯 한 순간 잠시 동안 성공한 것처럼 보여진 적은 많이 있지만 저들은 말씀과 같이 풀과 같이 스러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식대로 사는 사람들이 한 순간 잠시 고생을 하고 어려움을 당하고 손해를 보는 것같이 보인 적은 있으나 저들은 모두 다 말씀과 같이 큰 나무처럼 번성하고 성장하여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지 마시고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세상을 직면할 수 있고 이길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비록 우리는 양과 같고 세상은 이리 같아도 전혀 세상이 무섭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리와 싸워 승리하는 하나님의 어린양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의 이리들을 다 몰아내고 어린양들이 마음놓고 딩굴수 있는 푸른 초장과 같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 않네 하늘의 영광 하늘의 영광 나의 맘속에 차고도 넘쳐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


캄캄한 밤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의 길 되시고 나에게 밝은 빛이 되시니 길 잃어

 
주제 성경 설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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